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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팝촌처럼 튀어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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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협 작성일06-11-03 11:57 조회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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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처럼 튀어올라라

[한겨레21 2006-10-24 08:03]

[한겨레] 세계무대 진출을 위한 계획과 포부를 품은 야무진 친구들에게…
한국인 직원의 씨가 마른 국제기구가 당신의 도전을 기다린다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도대체 우리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어제 내가 받은 어느 학생의 이메일을 보라.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제 꿈은 유엔사무총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가 아니라 꼭 집어서 유엔사무총장이 되겠단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 아이 들이 유엔사무총장 자리까지 이렇게 쉽게 넘볼 만큼 기세가 등등해졌단 말인가? 내가 어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엔사무총장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신문이나 교과서에서나 보는 멀고도 아득 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 자리를 도전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할까, 당차다고 할까, 하여 간 귀엽고 기특해서 이런 친구들이 보내는 메일은 짧게라도 꼭 답을 해준다.

지난 6년간, 딱 한명 만나다

“그래 아주 멋진 꿈이구나. 그 꿈, 꼭 이루기를 바란다.”

지난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국제 긴급구호 관련 책을 낸 이후, 나는 하루에도 10통 이상의 편지 나 이메일을 받는다. 이른바 팬레터이다. 주로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보내는데 수줍은 자기소개, 책 읽은 소감 등과 함께 나처럼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중에는 ‘긴급구호’라는 환상에 젖은 아이들도 없진 않지만 국제무대 진출을 위해 매우 구체적인 계획과 포부를 가진 야무진 친구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진지한 질문이 많아질수록 내 대답은 점점 더 궁해진다는 거다. 나를 인생의 선배로 여기고 묻 는 말이니 아는 것은 모두 다 알려주고 싶지만 솔직히 나도 체계적인 교육과 과정을 거쳐 국제 비정부기구 (NGO) 직원이 된 것이 아니라서 무엇이 정석이고 지름길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면서 “그냥 열심히 해봐요. 될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무책임하게 조언할 수는 없다. 한 아이 의 진로와 인생이 걸려 있는 일이니 말이다.

몇 달째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8대 유엔사무총장으로 사실상 확정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난 너무 기뻐서 꽤액, 왜가리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분 의 개인적인 영광이자 대한민국 외교의 쾌거요,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가 수직 상승할 거라는 기대 때문만 은 아니다. 뛸 듯이 기뻤던 진짜 이유는 내게 이메일 보내는 그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좋은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일하고 싶다고요? 물론 할 수 있죠. 앞으로 유엔 등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니 기회 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실력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싶다고요? 물론 될 수 있죠. 보세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더욱이 반 장관의 출발점과 성장 과정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아이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 향을 준다. 특권층 자녀가 누리는 특혜를 발판 삼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노력과 신념과 성실함으로 그 자리까지 올랐다는 점은 국제무대를 꿈꾸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더없이 좋 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도 나처럼 배경도, 끈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기 회가 올까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해줄 대답도 생겼다.

그러나 국제기구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과 필요에 비해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인력 진출은 생각만큼 활 발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고 유감이다. 나는 국제 구호단체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세계 대형 재난의 현장에 가면 유엔 난민기구는 물론 유니세프, 국제식량계획(WFP) 등 여러 유엔기구들과 함께 일한다. 그런데 지 난 6년간 현장에서 같이 일한 그 많은 유엔 직원 중에 한국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찾아보면 그렇게까지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눈에 띌 만큼의 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기야 그게 어디 유엔뿐일까. 내가 속한 단체도 마찬가지다. 월드비전은 한국전쟁 때 전쟁고아를 구호하 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한국이 첫 번째 수혜국이자 1990년까지 40년 넘게 세계 각국에서 지원받은 최장 기 수혜국이다. 지금은 100여 개국에 사무실을 두고 2만5천여 명의 직원이 전세계 1억여 명을 돕는 세계 최대 NGO로 성장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우리 단체 국제본부 국제직원 300여 명 중 한국 직원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다 는 사실(나도 재난지역에 긴급구호 요원으로 파견근무하는 동안에는 국제직원 역할을 하지만 엄연한 한 국 사무실 직원이다). 부랴부랴 몇 년 전부터 국제직원 양성과 배출을 우선과제로 삼고 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냄비 속에서 달궈진 옥수수 알갱이들

이에 비하면 요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국제무대 진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 거기에 우리 위상 에 걸맞은 국제사회의 요구와 기대까지 합쳐져 그야말로 외적 분위기는 제대로 무르익고 있다. 이제는 우 리 젊은이들이 구체적으로 준비해 실력으로 무장한다면 꿈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냄비 속에서 잔뜩 달궈진 옥수수 알갱이 같다고 할까? 그중 일단 한 알이 튀기만 하면 그것을 신호탄으로 바로 뒤이어서 냄비 안의 다른 알갱이들도 일제히 타타타닥 튀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잘 튀겨진 팝 콘들이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제 몫을 해내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아, 재난 의 현장에서 이런 눈빛 푸른 한국 젊은이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뻐근하다.

내게 메일을 보내준 ‘냄비 안에 들어 있는 옥수수 알갱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그동 안 일일이 쓰지 못한 답장을 대신하며 기분 좋게 첫 번째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