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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폐허에 학교 서던날 희망 벅차 울어버린 카카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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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원협 작성일04-04-12 10:59 조회1,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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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폐허에 학교 서던날 희망 벅차 울어버린 카카르 선생님



[한겨레] 2004년 04월 07일 (수) 20:24

지난 3월18일 저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시내 산동네 빈민가인 자말미나에서 열린 초등학교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지역은 도시귀향 난민들이 카불시내에 정착한 곳으로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는 도심속의 깡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침 해가 뜨기 전 동네과부들이 부르카를 덮어 쓰고 산동네를 내려가 시내로 가는 것입니다. 구걸하러 가는 거지요. 그 시간에 동네아이들은 물통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와 물을 길어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아슬아슬하게 산 위로 올라갑니다. 저녁 해질 무렵까지 아이들의 물통행렬은 멈추지 않습니다. 땅거미가 지고서야 시내에서 구걸하던 과부들도 조심스레 남의 눈을 피해 산동네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말미나 초등학교의 카카르 교감은 20년째 이 동네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이슬람 문화권의 독신 여성입니다. 탈레반 정권의 지난 6년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동네 여자아이들에게 다리어(타지크족과 파샤이족의 언어)를 몰래 가르쳤습니다. 탈레반시절 여성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여성에게 글을 가르친 사람이나 여성의 몸으로 교육을 한 사람들은 적발되면 모두 처형됐습니다.

탈레반 정권이 물러난 2002년, 카카르 교감은 집을 박차고 나와 50평 정도 되는 2층짜리 건물을 빌렸습니다. 전쟁의 흔적으로 건물 외벽이 없었고, 강한 회오리 바람을 막아줄 유리창조차 없는 모래성과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아이들은 2000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카카르 교감은 탈레반 정권동안 바깥 출입도 할 수 없었던 여자 교사들을 다시 불러 모았고, 곧바로 하루 3부제 수업으로 아침 여섯시부터 해 질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쓰러질듯한 건물인데도 비싼 임대료를 독촉하며 건물을 비워달라고 협박하던 건물주의 앙칼진 목소리가 카카르 교감을 지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배우기 위해 학교를 찾아오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 여러 NGO와 외국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다가 굿네이버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4년 3월18일 학교준공식장에서 카카르 교감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전하고 넉넉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됐고, 교무실 한 켠에 번듯이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책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산중턱 자말미나 동네의 물 긷는 아이들은 이제 희망을 긷는 꿈지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계속해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 아이들에겐 무엇이든 배우는 대로 할 수 있는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카카르 교감의 축사는 힘이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한국의 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를 만나 꾸준히 도움을 받아 왔지만 이번 학교 준공식만큼 카카르 교감의 생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20년간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공부하던 아이들과 여성의 신분으로 힘들게 걸어왔던 과거의 잔상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던 카카르 교감의 얼굴엔 어느덧 미소가 살포시 고여 있었습니다.

이병희/굿네이버스 사무국장 ⓒ 한겨레(http://www.hani.co.kr)